서해바다 같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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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 잡념의 밭을 일구자

차를 중립으로 두고 내렸다.

뻬호 2018. 12. 13. 15:26

 어제밤에 있었던 일이다. 마트에가서 물건을 사고, 용성통닭에 후라이드를 사러 갔다. 물론 전화주문한 것을 받으러 간 것이다.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처음엔 어지러운줄 알았다. 이게 왠걸. 차가 앞으로 가네. 바로 올라타 브레이크를 밟긴 밟았는데, 이미 보도블럭에 닿은 후였다. 다친데도 부서진데도 없었다. 블랙박스로 본 세상에 보면 스르르 흘러가는 차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난 당연히 안그러겠지 했는데 완전 멍청이네. 난 운전도 굉장히 오래했고, 민감하게 운전한다고 나름 자부한다. 비상시에 올라타서 브레이크 밟는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역시 세상일 모든 것은 해보기전에 모른다. 바로 브레이크 밟기가 어렵더라. 이것도 운전면허 시험에 넣어야 되는거 아닌가 싶다. 올라타서 문닫고 자세잡고 브레이크 콱 밟는 항목. 이젠 의무적으로 데이라이트 던가, 긴급제동 시스템을 넣어야 한다면, 오토홀드, 문열림 파킹도 의무화 해야 될 것 같다. 굉장히 많은게 의무화 되면 대부분 자율주행이겠지.

 차가 흘러가서 놀란것도 그런거지만, 정말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힘들기도 하다. 특별히 대단한 것들을 하지 않는데 기운이 없는게 뭐가 문제가 있는건지 나이가 먹어서 그런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뭐든 움직일때는 알아채지 못하다가 멈춰선 후에야 좋고싫음이 완전히 판단된다. 나이가 먹고서는(?) 요즘에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무감각하고, 별다른 자극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방향을 못잡았다. 해야할 일들이 눈앞에 쌓여서 그것을 해나가는게 인생인지, 내가 거창한 계획들에 파묻혀 시간 지나는지 모르는 삶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이런 모든 생각들이 의미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일이 별 기대가 되지 않는다. 내년이 오는게 매년 더 싫어진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를 싫망시키는게 참 싫다. 배가 있으니 항해를, 차가 있으니 드라이브를, 다리가 있으니 걸어야지. 이런 상황들을 당연히 생각하는게 인간이면서 동물임을 알겠다. 예전에 한 글에서 카이스트의 자살율이 높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진짜건 말건 상관없다. 여하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인간사가 무의미함을 일찍 깨닫는다고 써 있었다.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 사회와 돈, 노동 이 모든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극소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그안에서 소확행이건, 대확행이건 느끼며 사는건데 참으로 별로다. 큰관점으로는 인간이 고등동물이 아니라 하등한 동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벌의 습성이건 개미의 사회를 구경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나. 결국 알고있는 모든 사회는 여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영화 '루시'를 보면 세포의 사명은 내가 얻은것을 후세에 넘겨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사회는 어떤가. 내가 얻은것을 후세에 넘겨주는가. 자기가 갖기 바쁘고, 파괴하고, 모르게 하려하고, 하나를 가진것도 모자라 남의 반개를 빼앗으려 한다. 쓰레기 중에 상쓰레기가 대단하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사회다.

 차를 중립으로 두고 내린 것으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심해야지. 남을 손가락질 하기전에 나부터 둘러 봐야지. 오토홀드가 없는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의 아쉬움. 그에 따른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음의 탄식 그리고 투정.

 변하는건 없다. 아니 변할 수, 변화시킬 수 있다. 그중에 가장 쉬운 것은 남에게 변화하라고 지적하는 것,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이 먼저 변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너와 내가 조금씩 변하는 것이다. 조화.

 누구와 조화를 이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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